삼년산성은 충북 보은의 오항산에 위치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석성이다. 성을 축조하는데만 삼년이 걸렸다고 하여 성의 이름이 삼년산성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 보은군의 지명이 삼년군이라 삼년산성이라고 불렸다고도 전해지기도 한다. 산봉우리를 감싸듯 성이 축조된 모습이 삼국시대의 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보존이 잘되어 있다. 크고작은 돌을 가로세로로 쌓아올린 방식은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견고한 성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삼년산성은 성벽의 높이가 10m를 거뜬히 넘기고 폭 또한 10m에 이르는 웅장한 산성이다. 성내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어 물을 공급하고 있었고 주변은 험한 봉우리로 되어 있어 적의 침입이 결코 쉽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삼년산성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로 나아가기 위한 전초기지였다고 한다. 또한 고구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기도 하였다. 고려의 왕건이 한때 이곳을 공격한 적이 있었으나 크게 패배하여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산 능성을따라 성벽을쌓아 그 방어력이 배가된 산성이 바로 삼년산성이 아닐까. 산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에 놀라고 그 축조 방법에 감탄하게된다. 하지만 성벽위의 넓은 공간이 평평하기만 한것은 의문을 남긴다. 날아오는 화살 하나도 피할수있는 장치가 하나도 없이 넓직하기만 하다. 망루가 있었으나 무너져버린것인지 알수없지만 지금의 모습만으로는 그 형태가 특이하기만 하다. 삼년산성... 돌하나하나 쌓아 올렸다니 삼년이 족히 걸렸을 법 하다.^^
산성을 따라 오르다보면 웅장한 산성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삼국시대의 산성이지만 가장 보존이 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년산성의 북쪽 성문에는 아직도 입구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있다. 안쪽에서는 10m의 높이지만 성 바깥에서는 50m를 족히 넘기는 높이가 되어 버린다.
산성을 가득메운 들풀들이 산성을 물들이고 있다. 산성의 성벽은 아주 튼튼하게 축조되어 있다.
산성의 정상부는 성벽이라기보다는 가파른 등산길같은 느낌이 든다. 산성의 성벽에 올라서면 충북 보은땅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산성의 오르내리는 길이 매우 가파르다. 북쪽의 성벽은 급경사로 이어져 있는 곳이다.
성 안쪽에서 성벽으로의 높이는 1m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삼년산성의 성벽은 꼭 현대식 건축기법처럼 축조되어 있다. 벽돌로 가지런히 쌓아올린듯한 모습이 삼국시대의 건축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특이하게 성벽위가 평평하게 되어 있다.
성벽의 외관은 너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 높이가 10m를 거뜬히 넘기고 있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충족할수 있는 요새였다.
성벽을 따라 조성된 길을 가다보면 바깥쪽의 경사가 급하여 성벽이 높은 곳은 오히려 안쪽성벽은 낮은것을 알수 있다. 산의 지형을 잘 이용하여 성을 축조한 신라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곳이다.
성을 이루고 있는 돌의 크기는 그리 크지않다. 벽톨처럼 잘 다듬어진 돌들을 가로 세로로 쌓아 성벽을 튼튼하게 하였다.
성안에는 연못이 있었다. 산성을 중심으로 성의 중심부가 낮아 물이 많이 고인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보은군청에서 바라다 본 산성의 모습은 그리 험하지 않다. 산 정상에서 보은 땅을 지키고 있던 삼년산성. 무너질줄 모르던 산성의 위용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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