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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사고.

[스크랩] 부시 대통령 조상이 한국인

by 헤스티아 ™ 2009. 1. 21.
 


Subject: 부시 대통령 조상이 한국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조상이 한국인으로 밝혀졌다.

 

미국 워싱턴타임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예일대 연구진이 오랜 동안 조지 부시 대통령의 가계(家系)를

추적한 결과 부시 가문이 한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예일대 연구진은 4년 전부터 미국 역사상 두 번에 걸쳐 대통령을 배출한 부시 가문에 대한 추적을 해왔는데,

부시 가문이 시작된 가계도에서 미국이나 유럽계가 아닌 한국계 인물을 발견하였으며

그가 부시 가문의 시작점에 있다고 전했다.

 

연구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한국인은 성이 부(夫)씨 였는데, 중국과 인삼무역을 하던 중 15세기 경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영국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 정착하여 부시 가문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夫)씨는 희귀성 중의 하나로 남한에는 현재 8천여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부시 가문이 부씨 성을 가진 인삼장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근거로서 부시 가에서 처음에 사용한

성의 스펠링이 Bussi 였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부시 가문이 대대로 재벌가문으로 유명한데 이 또한 조상이 인삼장사를 하며 상술에 뛰어났던

영향이 크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부시 가문의 조상이 한국인이었던 영향으로 부시 가문에서는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 중의 한명이 지금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라고 연구진은 주장 했다.

 

실제 조지 W 부시는 발음이 부정확하고 이상한 영어를 사용해서 English Patient(영어환자)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연구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은 부시 가문의 조상이 한국인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북한이라고 해야

맞다고 말했다.

 

처음 인삼장사 부씨가 살던 고향이 지금의 황해도 개성이라는 것개성은 예로부터 인삼의 산지로도

유명한데 이 곳에서 부씨가 살았으므로 부시의 조상은 북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밝혀진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부시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먼 친척이라는 사실이다.

 

연구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삼장사 부씨의 어머니는 전주 김씨였다고 한다 

즉 부씨의 어머니 쪽은 전주 김씨인데, 김정일 위원장이 전주 김씨 33대 손이므로 부씨의 후손인 부시와

김정일 위원장은 서로 먼 친척 뻘이 되는 셈이다.

 

워싱턴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도 얼마 전 이 연구 결과를 보고 받았으나 아직까지는 부시 대통령이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비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조상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자신의 조상이 북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 이상 조상의 나라를 적대시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과도 먼 친척 관계이기 때문에 김위원장에 대해서도 점차 호의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예측 했다.

 

과연 조상의 비밀을 알게 된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할 지

세계의 주목을 확 끄는 시점이다.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일보타임즈)
 
~~~~~~~~~~~~~~~~~~~~~~~~~~~~~~~~~~~~~~~~~~~~~~~~~~
 
    ※ 고, 양, 부(高, 梁, 夫)씨 (제주 삼성혈 이야기)     
 
고씨, 양(梁)씨, 부(夫)씨는 함께 탐라(제주)의 지배 씨족으로서, 이들 세성의 시조 탄생에
대하여 삼성혈의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모흥혈(毛興穴)
에서 솟아났다.  맏이를 양을나(良乙那), 둘째를 고을나(高乙那), 셋째를 부을나(夫乙那)라 하였다.  

세 신인은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사는데,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하여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 오는것을 보고 나아가 이를 열었더니, 그 안에는 돌함과 사자
(使者)가 있었다. 돌함을 열어보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 망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가 있었다.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본국 사자인데 우리 임금이 세 딸을 낳으시고 이르시되, 서쪽 바다에
있는 산에 신자(神子) 셋이 탄강(誕降)하고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 하시며
신에게 명하시어 세 따님을 모시도록 하여 왔사오니 마땅히 배필을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
라고 하고 사자는 구름을 타고 떠났다.

세 사람은 나이 차례에 따라 장가들고, 물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아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정하였는데,
   양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일도(第一都)라 하고,
   고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이도라 하였으며,
   부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삼도라 하였다.
그런 다음 비로소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니 날로 살림이 풍요로워졌다

 

삼성혈 안내 => http://www.samsunghyeol.or.kr/main.html



 
제주 부씨 (濟州夫氏)

시조 : 부을나(夫乙那)

부씨는 고(高)씨, 양(梁)씨와 함께 탐라국(耽羅國 : 제주)의 지배씨족으로서, 이들 세성의 시조 탄생에 대하여 삼성혈(三姓穴)의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부씨(夫氏)의 시조(始祖)는 유명한「탐라개국설화(耽羅開國設話)」에 등장하는 부을나(夫乙那)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탐라(耽羅)에는 본래 사람과 만물(萬物)이 없었는데 한라산(漢拏山) 북쪽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사람과 신인(神人)이
용출(湧出)하였으니, 이들이 곧 부을나(夫乙那)·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이다.

이들 삼신인(三神人)은 후에 벽랑국(碧浪國)으로부터 오곡(五穀)의 종자(種子)와 6축(六畜)을 가져온 세 사람의 미녀(美女)를
맞아 각각 아내로 삼고, 각기 활을 쏘아 화살이 맞닿는 곳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니 처음으로 탐라의 역사가 시작되어
 문화(文化)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문호(門戶)가 열리게 된 부씨(夫氏)는 탐라국 삼도(三徒)를 지배하여 오면서 왕자(王子)였던 부계량(夫繼良)이 신라
무열왕(武烈王) 때 안무사(按撫使)로 신라를 예방하여 외교에 길을 트고 왕으로부터 작록을 받았으며, 탐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던 부여계(夫麗季)는 탐라를 항복받기 위하여 침입한 신라군과의 싸움에서 애석하게 순절하였다. 그러나
부씨(夫氏)는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조선(朝鮮) 초에 진용부위(進勇副尉)로 별장(別將)을 지낸 부언경(夫彦景)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통을 지켜온 인물로는 언경(彦景)의 증손(曾孫) 삼로(三老)가 세종(世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형제 중
맏아들 유렴(有廉)은 어모장군(禦侮將軍)로 선조가 뿌리를 내린 제주도를 지켰고, 막내 유성(有成)이 육지로 건너가 경기도 연천(蓮川)
지방에 자리잡아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한편 유렴(有廉)의 아들 세영(世榮)은 어모장군(禦侮將軍)로 슬하에 각(恪)·협( )·열(悅)·신(愼)·픽(픽)·홍(弘) 등 6형제를 낳아
이들이 제주6파(濟州六派)의 파조(派祖)이 되었으며, 9세손 응호(應豪)는 어모장군으로 사과(司果)을 지냈고, 승일(承日)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그후 10세손에 이르러 보공장군(保功將軍)로 겸사복정(兼司僕正)을 지낸 상필(尙弼)과 어모장군 경필(景弼)이 가세를 튼튼히 다졌고,
진운(進雲)은 절충장군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다경진 만호(多慶津萬戶)을 거쳐 감은당보안(感恩堂保安)이 된 시웅(時雄)은 해상(海上)에서 해적떼를
 만나 무서운 힘을 발휘하여 해적들의 물건을 도로 빼앗아 싣고 돌아왔다는 설화가 전해질 정도로 힘이 센 장사였다.

그밖의 인물로는 절충장군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던 만원(萬元)과 통정대부(通政大夫) 만겸(萬謙)이 유명했고,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를 지내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도성(道聖)은 영조(英祖) 때 효행(孝行)으로 이름난
천겸(千兼), 대정 현감(大靜縣監)로 선정(善政)을 베풀어 청백리(淸白吏)로 일컬어졌던 사민(士敏), 학문(學問)이 뛰어나 유림(儒林)의
추앙을 받았던 도일(道一) 등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정조(正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거쳐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에 오른 종인(宗仁)은 제주 부씨가
자랑하는 인물로 일찌기 대정 현감(大靜縣監)로 나가 문학진흥에 힘을 쏟아 그 공덕(功德)을 찬양받았으며 뒤에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에
 이르렀고, 항희(恒熙)는 무과에 올라 감찰(監察)을 역임하여 한말(韓末)에 독립운동가로 정사에 기록된 생종(生鍾)과 함께 의절(義節)의
가맥(家脈)을 이어 제주 부씨를 더욱 빛냈다.

추신: 탐라국과 병합한 백제 황족이 제주 부씨와 동일한 성씨를 쓰고 있으나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출처 : 자료큰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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