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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잡이

스와질란드

by 헤스티아 ™ 2008. 9. 2.

수도 : 행정·사법 수도 음바바네, 왕실수도 로지타·루지지니, 입법수도 로밤바
정체·의회형태 : 군주제, 양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국왕/국왕
공식 언어 : 스와지어·영어
독립년월일 : 1968. 9. 6
화폐단위 : 릴랑게니(lilangeni, 복수형 emalangeni/E)
국가(國歌) : Nkulunkulu mnkati wetibusiso temaSwati("O Lord our God bestower

                 of blessings upon the Swazi")
남부 아프리카의 내륙국가.

 

 

 

 

 

 

자연환경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도에 따라 4개의 지형으로 나눌 수 있다. 서쪽끝은 전국토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고지 벨트(평균 높이는 해발 1,100∼1,400m)로 스와질란드 최고봉인 엠렘베 봉(1,861m)이 이곳에 있다.
고지 벨트의 동쪽에 중지 벨트(610∼763m)가 있으며 전영토의 28%를 차지한다. 그 다음은 국토의 33%를
차지하는 저지 벨트(153∼305m)가 있으며 가장 동쪽에 있는 루봄보 단층애(斷層崖)는 국토의 9%를
차지한다. 로마티·우수투·음콘드보·코마티 강은 대표적인 영구천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며 이들
 4개 지역을 모두 통과한다. 이 강들은 수력발전을 위해 개발될 수 있는 경제적 효율성이 아주 크며,
보다 건조한 중지 벨트와 저지 벨트에 있는 대규모 사탕수수·감귤 농장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기후는 동쪽이 연강수량 750∼1,300㎜의 아열대기후이며, 서쪽 구릉지대는 1,016∼1,300㎜로 온화하고,
연평균기온은 서쪽이 15℃, 동쪽은 22℃이다. 고도가 높은 서쪽에는 초지가 발달한 반면 동쪽의 저지대에는
건조한 삼림 사바나가 펼쳐지며, 고지 벨트의 넓은 지역에 소나무와 유카리나무를 심어 제지공장에 펄프
 원료로 공급한다. 부근에 서식하는 동물로는 하마·영양·얼룩말·악어 등이 있다.
지하자원은 북쪽의 석면광, 북서쪽의 철광석, 중동부의 석탄으로 한정되어 있다. 1980년대초 역청탄과
점결탄(粘結炭)의 매장량은 1억 8,100만t으로 추정되었다. 그밖에 고령토·보석·중정석(重晶石)·엽랍석
(葉蠟石) 등이 소량 매장되어 있으며, 1980년대초부터 우수투 강과 우수시와네 강(리틀우수투 강)을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국민
 
 
연간 인구성장률은 1981년 2.8%를 기록했으며, 출생률과 사망률은 인구 1,000명당 각각 48명과 22명으로
모두 높은 편이기 때문에 정부는 1980년대 들어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가족계획사업을 벌여왔다. 일자리를
찾아 많은 남성인구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주하여 여성인구비는 119:100으로 남성인구를 초과한다.
 인구밀도는 평균 36명/㎢이며, 저지 벨트는 15명 이하이고, 중지 벨트의 에줄위니 계곡은 213명/㎢에 이른다.
스와질란드는 인종언어학적으로 70개 이상의 씨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9/10가 스와지족(남부 응구니족)
이다. 그들의 언어인 스와지어는 니제르콩고어족의 베누에콩고어군에 속하며, 스와지어와 영어가 공식 언어
이다. 모잠비크로부터 온 샹가네족을 포함한 그밖의 아프리카인은 2만 5,000명 정도이며, 유럽인(대부분
영어나 아프리칸스어를 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인)은 1만 명 이하로 농업이나 광업, 그밖의 전문직에 종사
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리스도교도이며 나머지는 애니미스트이다. 유라프리카인(유럽인과 아프리
카인의 혼혈)과 아시아인의 수는 약 5,000명이며, 그들은 주로 상업 및 공업에 종사한다. 인구의 7.9%만이
도시지역에 거주하며, 수도인 음바바네의 인구는 1980년 2만 5,000명으로 추산되었다.
 
 

 
경제
 
 
도매업·소매업·농업·경공업에 기초한 시장경제이며, 국민총생산(GNP)은 1980년 3억 8,000만 달러였고,
 1인당 GNP는 680달러로 최근 들어 신장되었다. GNP의 1/5을 차지하는 농업에 노동인구의 7/10이 종사
하고 있다. 스와지족은 자급농업을 주로 하는데 추장이 토지를 할당하며, 설탕·감귤류·통나무 등을
생산하는 대규모 농장은 유럽인들이 관리한다. 주요환금작물은 사탕수수이며, 전통적인 부(富)의 상징인
소를 많이 사육한다. 아구창(鵝口瘡)이 스와질란드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잠비크와의 국경에
방책을 세워놓았다. 응궤니야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의 수출이 1980년에 중단되면서 광업의 중요성이
감소되었으나, 석면과 석탄은 계속 많은 양이 채광되고 있다.
 
제조업은 GNP의 1/4을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1/10 이상이 이에 종사한다. 스와질란드공업개발회사는
 마차파·만지니·은랑가노 등에 경공업과 중공업 단지를 조성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제조업의
규모가 비교적 크며, 펄프·직물·시멘트·농기계·전자장비 등을 주로 생산한다. 전력 생산량은 1980년 시간당
 2억 8,400만kW 에 달했으며, 전력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과 수력발전으로 충당
되고 있다. 주말을 보내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쓰는 돈이 외화의 주소득원이다.
 스와질란드는 남아프리카 랜드 통화지역(South African Rand Monetary Area), 남아프리카 관세동맹
(South African Customs Union)에 가입해 있다. 로메 조약으로 유럽 경제공동체(EEC)에 설탕과
쇠고기를 유리한 조건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주요 교역대상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영국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80년 스와질란드 수출액의 30% 정도를 차지했다.
 
 
 

 
정치·사회
 
 
스와질란드는 전통적인 부족법에 의해 통치되는 군주국이다. 1979년에 개정헌법이 채택되었으며,
최고 통치권은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뇌인 왕에게 주어져 있고, 그는 자신이 임명한 내각의 도움을 받아
통치한다. 자문기관격인 양원제 의회는 50명의 하원의원과 20명의 상원의원으로 구성되며, 정부제안을
검토하고 왕을 자문하는 것으로 역할이 한정된다. 국왕은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각 10명씩을 선임하며,
 나머지는 추장을 대표로 하는 지방의회에서 선출된다. 1973년 이후 정당활동이 금지되었으며,
사법체계는 항소법원, 고등법원, 하급법원, 스와지 법원(전통 법원) 등으로 구성된다. 소규모 군대도
있다.
노인·장애자·유가족 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보건상태는 좋지 못해
 평균수명이 45세이며, 유아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약 150명에 달한다. 정부 및 선교원, 산업체
에서 의료활동을 하며, 개인병원의 의료수준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훌륭한 편이다. 결핵·
주혈흡충병·호흡기질병·말라리아·위장염·영양실조 등이 대표적 질병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글을
 읽고 쓰며, 교육은 무상이지만 의무제는 아니다. 교육기관으로는 7년제 초등학교, 5년제 중등학교,
농업·공업·사범 대학 등이 있다. 보츠와나 스와질란드대학교가 스와질란드 캠퍼스와 함께 1975년에
세워졌다. 스와질란드 정보국이 영어와 시스와티어로 된 일간지를 발간하며,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
 
 
대표적 문화행사인 잉콸라(국경일)와 갈대춤 축제가 왕족들이 사는 마을인 로밤바에서 열린다. 전통
음악은 스와지족의 사회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딸랑이, 방패(타악기로 이용), 사슴뿔피리,
기다란 갈대 피리 등의 반주에 맞추어 여러 가지 목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역사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반투어를 사용하는 스와지족은 16세기에 현재의 모잠비크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
했는데, 스와지족의 한 부류가 떨어져 나와 팡골라와 그레이트우수투 강 사이에 정착했으나 줄루족의 압박을
 받아 북쪽의 리틀우수투 강으로 옮겨갔으며, 1836년 소부자 1세가 죽은 후 후계자였던 음스와지(음스와티)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 부족의 이름을 지었다. 그후 스와지족은 북쪽의 많은 부족을 정복했으나, 1846년에
 크로커다일 강 북쪽의 영토권을 레이덴뷔르흐 공화국에 양보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음스와지는
줄루족에 맞서기 위해 영국의 원조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1886년 유럽의 정착민에게 자치법이 허용되었고,
 2년 후 스와지족은 영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와지족 대표로 구성된 임시정부 설립에 동의했다. 스와지족은
 1893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통치제안을 거절했으나, 이듬해 합병 없이 사실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통치한다는 조약에 서명했다.
 
 
보어 전쟁과 1903년 영국이 트란스발을 통치하기 시작한 뒤, 트란스발의 총독이 스와질란드에 대한 통치권과
 포고에 의한 입법권을 갖게 되었으며, 1906년에는 이런 권한이 바수톨란드·베추아날란드(보츠와나)·스와질
란드 등을 통치하는 고등판무관에게 넘어갔다. 1949년 영국은 남아프리카 연방의 스와질란드 통치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1963년 제한적 자치권을 인정하는 헌법이 공포되었으며, 1967년에는 스와질란드 왕국이 영국보호령으로 탄생
했고, 이듬해 입헌군주국으로 완전히 독립했다. 스와질란드는 1970년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에 가입하여 무역균형을 이루는 데 커다란 효과를 보았다. 1973년과
1977년에 소부자 2세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헌법을 폐지했지만, 2차례 모두 2년 뒤에 새로운 의회와 헌법이
수립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스와질란드는 고립영토이기 때문에 바다까지 가기 위해서는 모잠비크의 철도를 이용해야 하고,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경제는 균형 있게 발전하여 1980년대까지 계속 성장했다.
 1982년 그당시 세계 최장기집권 군주였던 소부자 2세가 83세의 나이로 죽은 뒤, 나이 어린 마코재티베
왕자가 후계자가 되어 그의 어머니인 은톰비 여왕이 섭정과 황태후(은들로푸카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과의 관계
 
 
스와질란드는 남한단독수교국으로서 1968년 11월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국제무대에서 변함없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온 정치우방국이다. 이에 한국은 1970년 이후 각종 물자를 무상으로 제공해왔으며,
그밖에도 의료단을 파견하고 기술연수생을 초청하여 훈련시키는 등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양국의 통상
현황은 1991년을 기준으로 하여 대한수입 755만 달러, 대한수출 1,442만 달러로 집계되었는데, 수출품은
주로 원자재나 천연원료에 치중되어 있고 수입품은 섬유류를 비롯한 공산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